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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지지 않는다는 말.

문득 책이 필요했다. 

있는 책이라곤, 근 10년 전부터 읽어왔던 김하인의 각 계절별 시집 4권, 그리고 몇 가지 기술서적이 전부인 내게 문득 그냥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나를 간접 체험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동한 것이다. 아마 최근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라던가, 넘치는 일들로 인한 정신적 피로가 겹쳐 "내 삶은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왔나"가 궁금해진 모양이다.

그래서 정해진 스터디 시간보다 두 시간쯤 먼저 서점에 들렀다. 평소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내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삶이 적힌 책"을 찾아야 할지 알리가 없어서 무작정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도착한 에세이 코너. 얼추 내가 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더라. 그렇게 또 한 번 무작정 진열된 책들을 들춰본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인생에 필수가 아닌 이상 모두 버려라. 마음가짐에 달렸다. 등등 각자 자신(작가)들이 일생에 걸쳐 자신의 삶을 다듬어 나가며 느낀 것들을 전하려 때론 간결하게, 때론 감정적으로, 담담하게 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건 그저 나 어릴적엔 이런 일이 있었고, 지금은 이런 것들을 느끼며, 앞으론 이렇게도 한 번 살아볼까 한다는 그저 그런 옆집 아저씨의 이야기이다.

스무권쯤 책을 돌려 읽었을까, 꼭 맞는 느낌의 책을 찾았다. 이제 막 스물 몇페이지만 읽어보았지만 뭐랄까, 소름끼치게 공감한다는 느낌이나, 예술적으로 잘 썼구나라는 느낌보다 작가가 마음대로 풀어내놓는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너무나 편하고 몸에 꼭 맞는 그런 글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야말로 일상의 경험들을 그저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문장들. 아침마다 팬케익과 직접 짜낸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커피 한 잔 들고 출퇴근하는 그런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의 일상이라는 점. 또한 사물 하나 생명체 하나에도 섬세하게 반응하고 풍부한 감성을 가진 여성 작가가 아닌 평범한 남성 작가라는 점이 오히려 더 와닿음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뒤로 갈 수록 어떤 식으로 나올진 모르겠다만, 다른 사람의 일상을 비록 글로만 체험하지만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것.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닌 작가의 말을 이해하고 책장을 넘기는, 그런 즐거움이다. 


지지 않다는 말 - 김연수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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